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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토 black earth

from Te, 태 by Chora Chorion 초륜, 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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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이 곡을 제주 4·3 항쟁의 영령들에게 헌정합니다.
뒷부분은 마저 제창해 주셔도 좋아요.


이 곡은 항쟁의 주체였던 무장대의 희생을 기리는 곡입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불온한 곡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라고 만든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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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간 경험의 총체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술가에게 표현의 자유는 곧 존재의 조건입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예술의 온전한 존재를 지켜내기 위해 사수해야 하는 최전방입니다. 필요시 그 전선(戰線)에 목을 내놓겠다는 마음을 담은 곡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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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에 송령이골을 찾아 간단히 감귤 놓고 인사 올렸습니다.
송령이골은 제주 서귀포 남원읍의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장대가 묻힌 곳입니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외세에 맞선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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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1947년 3월 1일에 제주 북국민학교 삼일절 기념대회 도중, 지나가던 어린아이를 기마경찰이 말발굽으로 차고서 도망쳤습니다. 그걸 본 사람들이 화가 나서 돌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이것을 핑계삼아 경찰이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주 북국민학교에 다니던 학생을 포함한 여섯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습니다.

3월 1일 저녁부터 제주도에 통행금지령이 선포되었고, '응원경찰'을 육지에서 추가파견하기 시작했습니다.

3월 10일부터 중앙정부에 3.1 발포사건에 대한 중앙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민관합동파업이 이어졌습니다. 이 민중항쟁은 발포사건에 대한 사과, 발포자와 책임자의 처벌, 유가족에 대한 지원 등을 요구사항을 내걸고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미군정은 이를 빌미로 탄압의 강화와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무렵 제주 각지의 오름마다 봉화가 피어올랐습니다. 제주도민들의 무장항쟁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뒤이은 전쟁에서, 미군정 이승만과 그 지휘 아래의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은, 3만여명에서 8만여명으로 추정되는 제주도민을 학살했습니다.

저는 5만명이라는 그 추산의 오차범위가 너무나 무겁고 아픕니다. 그 추산의 오차범위에는 신고조차 되지 못한 희생자와 몰살당한 일가족과 몰살당한 마을들과 수백 수천대에 거쳐 전래된 역사들과 전통들과 이야기들이 언어화되지 못한 채 잠겨 있습니다.

그렇게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는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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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월 12일, 미군정 이승만의 토벌대가 의귀초등학교에 마을 사람들을 집단으로 강제 구금했습니다.

현기영 선생님의 "순이삼촌"에는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발생했던 학살사건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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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교문을 향해 늘어서기 시작했을 때, 별안간 “군인들이 우리를 죽이레 데려감져” 하는 말이 전류처럼 군중 속을 꿰뚫었다. 그러자 교문 가까이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 흩어지며 뒤로 우르르 몰려갔다. 단상의 장교가 권총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가는 자는 가차없이 총살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이 말에 사람들은 잠시 주춤했을 뿐 다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중략]  

우리들은 서로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서로 이름 부르며 가족을 찾는 소리와 군인들의 악에 바친 욕소리로 운동장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머리 위에서 한 발의 총성이 벼락같이 터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서편 울타리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붙었다. 운동장은 순식간에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몰려가고 난 빈자리에 한 여편네가 앞으로 엎어져 있고 옆에는 젖먹이 아이가 내팽개쳐져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그 아기만 바락바락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영배 각시 총 맞았져!” 누군가 이렇게 속삭였다.
  흰 적삼에 번진 붉은 선혈이 역력했다.

[중략]

 죽은 사람을 보자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 앞이 트였지만 길수형과 나는 장교가 권총을 빼들고 서 있는 조회대 뒤로 달려갈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저쪽으로 가다간 저 사람이 틀림없이 총을 쏠 테지.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다.
  사람들이 서편 울타리에 붙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군인들은 긴 장대 두 개를 들고 나왔다. 그건 교무실 앞 추녀 끝에 매달아두었던 것으로 학교 운동회 때마다 비둘기들을 넣은 대바구니 두 개를 맞붙여 얇은 종이를 발라 만든 큰 공을 높이 매달아놓은 데 사용되던 거였다. 그것은 얼마나 신나는 경기였던가. 청백으로 나뉜 우리들이 모래 넣어 꿰맨 헝겊공(오제미)을 던져 상대편 바구니를 먼저 터뜨리는 순간 비둘기들이 날고 머리 위로 오색 테이프가 흘러내리고 색종이가 나부끼던 기분이란. 그런데 바구니공을 매달아놓던 장대가 이런 엉뚱한 데 쓰일 줄이야. 장대 두 개는 이제 한쪽에 몰려 있는 사람을 울타리에서 떼어내서 내모는 구실을 했다. 장대 양끝에 군인 한 사람씩 붙어서 군중 속으로 끌고 들어가 장대로 오십 명쯤을 뚝 떼어내어 교문 밖으로 내몰아가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을 틈타 길수형과 나는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와 할머니가 있는 조회대 뒤편으로 냅다 뛰어갔다. 청년단원들이 우리 다리를 겨냥해서 대창을 아래로 휘둘렀다. 그러나 용케 맞지 않았다. 우리가 쫓기며 조회대 뒤로 가자 거기 모인 우익인사 가족들이 얼른 우리를 안으로 끌어넣어 주었다. 할머니가 달려들어 치마를 벌리고 닭이 병아리 품듯이 우리를 싸서 숨겼다. 우리 뒤를 쫓던 청년단원 두 명이 우리를 포기한 것은 마침 우리 뒤미처 달려드는 다른 사람들 때문이었으리라. 아이들과 아낙네 열 명쯤이 달려들었다가 마구 내지르는 대창에 쫓겨갔다.
  장대 두 개가 서로 번갈아가며 사람들을 몰아갔다. 장대가 머리 위로 떨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고 장대에 걸린 사람들은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렸다. 장대 뒤에서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공포를 쏘아대자 사람들은 장대에 떠밀려 주춤주춤 교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교문 밖에 맞바로 잇닿은 일주도로에 내몰린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군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할머니들, 총부리에 등을 찔려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아낙네들, 군인들은 총구로 찌르고 개머리판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사람들은 휘둘러대는 총개머리판이 무서워 엉금엉금 기어갔다. 가면 죽는 줄 번연히 알면서 어떻게 제 발로 서서 걸어가겠는가. 뒤처지는 사람들에게는 뒤꿈치에다 대고 총을 쏘아댔다.
  군인들이 이렇게 돼지 몰듯 사람들을 몰고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얼마없어 일제사격 총소리가 콩볶듯이 일어나곤 했다. 통곡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길수형도 나도 울었다. 우익인사 가족들도 넋놓고 엉엉 울고 있었다. 우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외양간에 매인 채 불에 타죽는 소 울음소리와 말 울음소리도 처절하게 들려왔다. 중낮부터 시작된 이런 아수라장은 저물녘까지 지긋지긋하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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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군정 이승만의 토벌대가 마을 사람들을 한 군데에 몰아놓고 '빨갱이'로 몰아가며 학살하던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래서 1949년 1월 12일, 미군정 이승만의 토벌대가 의귀초등학교에 마을 사람들을 집단으로 강제 구금했던 그 날, 의귀국민학교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고 남로당 무장대가 학교를 습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군정 이승만의 토벌대 4명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토벌대는 그곳에 모아둔 마을 주민을 집단적으로 보복사살했습니다. 무장대도 전멸당했습니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무서워서 아무도 그들의 시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방치된 채로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나마 그들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서 매장해 둔 곳이 송령이골입니다. 시민사회단체들에서 차츰 그곳을 찾아 비석과 표지를 세웠습니다. 그 비석에는 다음의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破邪顯正
파사현정 -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

除暴救民
제폭구민 - 폭정을 없애고 백성을 구한다.

동학 농민 혁명의 구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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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제주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그런데 제주는 아름다운 섬인가요?

몇만명을 죽여놓고 마을을 태우고 숲을 베고 영어마을을 세우고 숲을 베고 공항을 만들고 숲을 베고 카지노를 짓고 숲을 베고 관광지를 만들고 숲을 베고 호텔을 세우고 숲을 베고 리조트를 세우고 -- 숲을 베어서 또 무엇을 하는지요?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피바람 앞에서 섬을 지키려던 사람들의 혼이, 녹아든 숲입니다.

제주에, 나무들이 수령을 다할 수 있는 숲이, 오래도록 울창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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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대의 희생을 기리며,

이 곡을 제주 4·3 항쟁의 영령들 영전에 헌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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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lyrics

내 혈액의 농도는 바닷물
바람이 매만지는 적혈구
검은 흙으로 풍화되어
돌아서 돌고 돌아오리라
돌아서 돌고 돌아오리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기억도
슬픔도 이별도
기쁨도 아픔도
이성도 우상도
눈물도 웃음도
공허도 공포도 없이

그 이상의 이상
그 너머의 너머
영원한 지금의 이대로

잔인한, 잔인한, 잔인한 사월에
잔혹하게 엉킨 동백의 뿌리여

길을 터 주오
길을 터 가리
꽃길 흩뿌려진 동백의 잎새

길을 터 주오
길을 터 가리
바람이 흔드는 적혈구 잎새

내 혈액의 농도는 바닷물
바람이 매만지는 적혈구
검은 흙으로 풍화되어
돌아서 돌고 돌아오리라
돌아서 돌고 돌아오리라

길을 터 주오
길을 터 가리
꽃길 흩뿌려진 동백의 잎새

길을 터 주오
길을 터 가리
바람이 흔드는 적혈구 잎새

길을 터 주오
길을 터 가리
꽃길 흩뿌려진 동백의 잎새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credits

from Te, 태, released April 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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